golf

19. 골프의 역사

松泉 2010. 6. 6. 17:54

골   프 (GOLF) 

코스 위에 정지하여 있는 볼을 클럽으로 쳐서 정해진 홀에 넣어 그때까지 소요된 타수로 우열을 겨루는 경기.

구분 구기 경기
기원국 스코틀랜드 · 네덜란드
한국도입시 기

 

1890년경

 

골프의 역사

 

로마 시대에 이미 깃털을 넣은 가죽 볼을 끝이 둥근 자연목으로 쳐서 날려 보내는 '파가니카'라는 게임이 있었다.

로마군의 진주(進駐)와 함께 이 게임은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었는데 영국에서는 칸브카, 프랑스에서는 주드메이유, 네덜란드에서는 헤트콜벤이라 했으며 모두 전원을 걸어 다니면서 클럽으로 볼을 치는 경기였다.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클럽을  '골프', 볼을 티(tee)에 두는 티 그라운드를  '토이 티', 홀에 넣는 것을  '프텐'이라 부르는 등 현대 골프 용어의 어원이 된 것을 많이 엿볼 수 있다. 다만 오늘날 골프의 발상지는 스코틀랜드라고 추측하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15세기 경에는 지나치게 성행하여 전쟁에 필요한 궁술 훈련을 게을리해서 국방적 견지에서 문제가 된다고 보아 1457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2세가 제14회 의회에서 골프 금지법령을 제정할 정도였다.

그뒤 15세기 말부터 화약의 발명으로 궁술의 중요성이 사라져 골프 금지령도 폐지되었으며 특히 16세기에는 왕실에서 골프 붐이 더욱 거세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5세가 잉글랜드의 귀족과 골프의 정통을 겨루어 승리를 거두었다고도 한다.

또한 그의 딸인 메리 여왕은 육군사관후보생(밀리터리 캐디트)에게 클럽을 메게하고 세인트앤드루스의 코스를 걸어다녔다고 하는데, 이것이 '캐디'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 당시의 경기는 스코틀랜드 동해안의 '링크스'라고 하는 모래땅 코스에서 진행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로 부임한 제임스 1세가 1608년 브래크히스에서 골프클럽을 조직해 골프를 즐겼다고는 하지만 확증은 없다(→ 색인:영국)

그뒤 1744년 리스에 있는 코스를 자주 찾는 사람들이 지금의 '에든버러 골프인 협회'의 전신인 '신사골프협회'를 결성하여 에든버러 시(市)로부터 클럽 모양을 본뜬 은제(銀製) 트로피를 기증받아 이듬해 실버클럽대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색인:에든버러 골프인 협회)

이 협회의 의사록에는 13개조로 된 세계 최초의 골프규칙이 기재되어 있으며 이것이 현행 골프 총칙의 기반이 된다고 한다.

 

1754년 5월 14일에 22명이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에서 클럽을 결성했으며 1834년에는 국왕 윌리엄 4세가 이 클럽에 로열 앤드 앤션트 골프 클럽(Royal and Ancient Golf Club/R. & A.)이라는 명칭을 주고 규칙의 제정, 선수권대회의 개최·운영 등을 담당하게 했다(→ 색인:로열앤드앤션트 골프 클럽).

이것으로 영국 전체의 골프계를 일체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뒤 영국에서는 이 클럽이 중심이 되어, 1919년부터 영국 오픈골프토너먼트 대회, 영국 아마추어 골프 선수권대회 등의 선수권대회를 관리하고 있다.

한편 여자 클럽은 1872년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조직되었다.

 

미국에서는 일찍이 1657년 포트오렌지(지금의 뉴욕 주 올버니) 재판소의 의사록에 '빙상에서 헤트콜벤을 한 세 사람에 대한 고발'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1659년에는 노상에서 이 게임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취지문이 이 지방의 장관이름으로 고시되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영국에서 행해졌던 것과는 내용이 조금 다르며 그뒤에는 이와 같은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1873년 캐나다에서 로열몬트리올골프클럽이 창설되었으며 이것이 아메리카 양대륙 최초의 클럽이었다.

1887년 미국 최초의 클럽과 코스를 자랑하는 폭스버그골프클럽이 발족되었다.

이어 1888년 11월 뉴욕 주의 용커스에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골프 클럽의 이름을 본따 미국 골프 역사상 기념비적인 세인트앤드루스골프클럽이 창설되었다.

물론 골프 용구와 규칙은 모두 스코틀랜드에서 직수입했다.

그러나 미국의 골프 수준은 곧 영국을 따라 잡을 정도로 성장했으며 1894년 10월에는 미국 아마추어골프 선수권대회가 이 용커스에서 열려 다이아몬드·금·은·동메달을 내걸고 벌어졌다.

이보다 앞서 9월에는 로드아일랜드 주의 뉴포트 골프클럽에서 실버컵 선수권대회를 개최했다.

11월에는 세인트앤드루스와 뉴포트 두 클럽과 뉴욕 주 서던프턴의 시네콕힐스, 브루클린의 더컨트리, 위턴의 시카고 등 5개의 유명한 골프클럽의 대표들이 미국 아마추어 골프협회(미국 골프 협회[USGA]의 전신)를 창설했다.

 

현재 미국에 있는 3,400개 이상의 골프클럽이 여기에 가입했으며 9개의 국내 선수권 대회, 6개의 국제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를 주관하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조직으로는 1899년 설립된 웨스턴 골프 협회가 있으며 이곳에서는 주로 캐디의 교육과 복지에 힘쓰고 있다.

프로골프인 협회는 1916년 R. 워너메이커의 제창으로 창설되었으며, 라이더컵대회인 국제프로골프선수권대회와 프로서킷대회 등을 각각 공동운영하고 있다.

이처럼 골프는 적어도 세계 51개국에서 성행하고 있으며 1958년에는 USGA와 R. & A.가 중심이 되어 세계 아마추어 골프 연맹이 조직되어 아이젠하워 트로피를 놓고 최초의 토너먼트 대회가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열렸다.

19세기 이후의 유명한 골프 선수로는 영국의 존 볼, H.H.힐턴, H.바던, J.H. 테일러, C. 트레이, 아일랜드의 J. 카가 있다.

여자로는 마거렛 스콧, 존 V. 버드 여사, 파멜라 바턴, G.발렌타인 등을 들 수 있다.

미국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스코틀랜드에서 이민온 사람들 중에서 월터 헤이건, 보비 존스 등의 뛰어난 선수들이 배출되었다.

그밖에 틱 에번스, 벤 호건, 샘 스니드, 아널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 개리 프레이어(남아프리카 공화국), 톰 윗슨, 세베 발레스테로스(스페인) 등 힘이 넘치는 선수들이 출현했다. 한편 여자로는 패티 버그, 샌드라 헤이니, 조앤 커너, 낸시 로페스 등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골프의 역사

 

골프의 기원은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양을 기르던 목동들이 끝이 구부러진 나뭇가지로 돌멩이를 날리는 민속놀이가 구기로 발전했다는 설과 기원전 네덜란드에서 어린이들이 실내에서 즐겨하던 콜프(kolf)라는 경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네덜란드의 콜벤이라는 오늘날의 크리켓이나 아이스하키와 비슷한 구기가 14세기경 바다를 건너 스코틀랜드에 전래 되었다는 설이 있다.

15세기에는 골프가 지나치게 성행하여 국민의 무도()와 신앙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칙령으로 전면금지하거나,
안식일에는 플레이를 금지하였다.

골프는 귀족계급에도 만연되어 왕도 즐겼으며, 16세기 이후에는 신분의 상하를 불문하는 스포츠로까지 발전되고, 잉글랜드에까지 파급되었다.

골프를 ‘Royal and Ancient Game’이라고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골프에 관해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1744년 스코틀랜드에서 지금의 에든버러골프인협회의 전신인 신사골프협회가 조직되어 경기를 한 것이
골프클럽과 경기대회의 시초이다.

처음에는 실버클럽대회라 하여 실물 크기로 만든 은제
트로피를 만들어 쟁탈전을 벌였다.

이 협회의 의사록에는 13개조로 된 세계 최초의 골프규칙이 기재되어 있으며 이것이 현행 골프규칙의 기반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뒤 스코틀랜드·잉글랜드 각지에 골프클럽이 만들어졌으며, 또한 선수권대회 형식의 경기도 시작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코스(올드코스)가 있다.

이곳에서 1754년 5월 14일 22명이 모여 ‘더 소사이어티 오브 세인트앤드루스 골퍼즈’를 결성하였으며, 경기규칙의 제정, 핸디캡의 통일, 선수권 대회의 개최 및 운영을 담당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 클럽이 영국 골프계를 통할하게 되었다.

한편 여성골프클럽은 1872년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조직되었다.

골프가 활발해지자 클럽이나 볼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직인이 나타났으며, 이들은 골프 기술에도 능했으므로 실기교습에 종사하여 프로페셔널로서 인정받았다.

1860년 처음 제1회 영국 오픈 선수권 대회가 열렸으며, 1885년에는 전영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가 시작되었다.

골프는 19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신대륙으로 건너가 1873년
캐나다아메리카 대륙 최초로 로열몬트리올골프클럽이 창설되었으며, 1887년 미국 최초의 클럽과 코스를 자랑하는 폭스버그골프클럽이 발족되었다.

그후 20년도 못되는 동안에 황금기를 구가함으로써 영국에 맞먹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1894년 미국골프협회(USGA)의 전신인 미국아마추어골프협회가 창립되었고, 1895년 제1회 아마추어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으며, 같은해에 전미(US) 오픈선수권대회도 시작되었다.

현재 미국에 있는 3,400개 이상의 골프클럽이 미국골프협회에 가입했으며, 9개의 국내선수권대회와 6개의 국제아마추어선수권대회를 주관하고 있다.

미국의 골프는 20세기부터 영국을 능가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영국은 국력이 피폐해지면서 골프계도 침체되었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호경기에 의해서 미국 골프의 대중화는 눈부시게 진전하여 모든 면에서 영국 등을 압도하였다. 

 

볼과 클럽

 

■ 페더볼 시대

 

로마 시대의 파가니카처럼 골프는 처음에 새의 깃털을 꽉 채운 뒤 꿰맨 가죽으로 만든 공으로 경기를 했으며 현재의 규칙의 주된 것들은 이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1848년경까지 사용되었는데, 수제(手製)로 대량생산이 불가능해 가격이 비싼데다가 2라운드밖에 쓸 수 없었으며 물에 젖으면 부드러워져 완전한 원형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시의 클럽은 길고 멋있게 만들어졌으며 19세기초에는 드라이버·스푼·아이언·퍼터 등 4가지 종류가 고안되었다.

이 시대에는 선수권대회는 열리지 않았지만 세인트앤드루스의 우수한 선수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아웃과 인의 총점이 92~93점인 것을 보면 공이나 클럽의 성능도 무척 나빴던 것 같다.


■ 거터퍼처 시대

 

말레이 지방에서 나는 파라키업거터 나무의 유상수액(乳狀樹液)을 건조시킨 고무 물질로 만든 고형(固形) 고무공을 구타페르카볼(거터퍼처볼)이라 불렀다.

1845년 로버트 A. 퍼트슨 신부가 인도에서 보내온 비슈누(인도 三神의 하나)의 신상(神像) 주위에 채워 넣은 구타페르카를 보고 고안했다고 한다.

색깔은 갈색이었으며 평평한 판자 위에서 손으로 굴리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페더볼에 비해 제조도 간단하고 가격도 쌌으며 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고 날아가는 거리도 길었으며 그린 위에서 똑바로 굴러가는 특징을 갖고 있어 골프의 기술면에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다고 한다.

골프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종래에는 9홀의 코스를 왕복했으나 이를 18홀로 늘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점수도 좋아지게 되어 세인트앤드루스의 코스에서는 79(1858)~77(1869)로 대폭적인 비약을 보여주고 있다.

클럽도 딱딱한 볼을 칠 수 있도록 개량되었고 물푸레나무로 만들어진 샤프트는 히코리재(材)로 바뀌게 되었으며 7개의 우드, 6개의 아이언을 사용했다.

보통 골퍼들은 이중에서 8개를 골라 경기를 했다.

또한 이때부터 범포(帆布)로 만든 백 속에 클럽을 넣고 걷게 되었다.


■ 러버볼 시대
 

1898년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브랜드의 코번 하스켈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골프공과 똑같은 원리로 가는 고무실로 고무심(芯)을 감아 공을 만들었으며 이것은 거터퍼처볼보다 22.86m나 더 멀리 날아갔으며, 기술·코스·규칙에서도 커다란 발전을 했다.

이 무렵에 미국의 스포츠 기구회사에서 공을 대량 생산했으며 많은 연구를 통해 각종 공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결과 1920년 R. & A.와 USGA가 개최한 선수권대회에서는 지름 약 4.1cm, 무게 약 45.9g의 공을 공식공으로 정하게 되었다.

또한 1942년 USGA에서 볼의 속도를 초속 76.2m 이하로 규정했다.

이와 함께 클럽도 재래의 수공업에서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을 하게 되었으며 특히 우드클럽의 헤드에는 감나무나 합판재를 사용했고 히코리재 대신에 이음매가 없는 스틸 샤프트를 사용했다.

또한 그립에는 가죽이나 합성재료를 감았다.

이처럼 여러 가지의 클럽이 생산되었는데 1938년의 USGA에서는 1라운드에 사용하는 클럽수는 14개로 제한했으며 그 이하는 몇 개를 사용해도 된다고 규정했다.


현재의 경기에서는 클럽 헤드가 목재인 것은 우드클럽, 금속성인 것은 아이언클럽, 그린 위에서 사용하는 것은 퍼터라 부르며 각 클럽에는 번호가 붙어 있다.

우드 클럽은 1번 드라이버, 2번 브러시, 3번 스푼, 4번 배피, 5번 크리크를 비롯해 9번까지 있고 주로 페어웨이에서 사용한다.

아이언클럽도 1번에서 9번까지 있고 각각에 명칭을 붙여 1920년경부터는 대부분 번호로 부르고 있다.

1~3번이 롱아이언, 4~6번이 미디엄아이언, 7~9번이 쇼트아이언이다.

우드나 아이언 모두 번호가 커짐에 따라 헤드의 각도인 로프트가 커지고 샤프트는 작게 만들어지며 날아가는 거리도 짧아져 그린에 가까워질수록 번호가 큰 클럽을 사용한다. 또한 다이나마이트라고도 하는 벙커 전용의 샌드웨지, 그린 주위에서 홀 가까이로 공을 보내기 위해 어프로치를 할 때 주로 사용되는 피칭웨지, 퍼터와 비슷한 지거 등의 특수한 아이언도 있다.


코스

표준 코스는 아웃 9홀(1~9번), 인 9홀(10~18번) 합계 18홀로 이루어져 있다.
각 홀의 스타트 지점을 티 그라운드라 부르는데, 흙이 약간 높게 쌓여 있으며 직4각형을 이루고 있고, 2개의 마크가 앞 테두리를 나타낸다.
선수는 티에 공을 올려 놓고 홀을 향해 공을 친다.
에서 그린까지 깨끗하게 정돈된 잔디가 펼쳐져 있는데 이 구역을 페어웨이라 하며, 그 양편에는 초목이 있는 정비되지 않은 지대가 있다.
러프페어웨이에는 곳곳에 모래 벙커(샌드트랩)와 연못이나 하천과 같은 워터해저드도 배치되어 있는데 이것들을 통틀어 해저드라 부른다.
그린에는 조금 높게 흙이 쌓여 있으며 특히 잔디를 짧게 깎고 롤러로 땅을 골라 퍼트하기 쉽도록 되어 있다.
홀은 지름 약 10.79cm, 깊이 약 10.2cm 이상으로 그린의 적당한 장소에 설치되며 이곳에 공을 넣으면 1홀의 경기가 끝나며(홀아우트), 다음 티 그라운드로 옮겨간다.
각 홀까지의 거리는 각각 다르고 페어웨이의 모양도 다양하다.
우수한 선수가 보통 드라이브하고 나서 홀에 공을 넣을 수 있는 타수(打數)에 의해 그 홀의 파(표준타수)가 결정된다.
1라운드 18홀의 타수는 총 72가 표준 코스이며 공식 선수권대회에서는 원칙적으로 18홀의 전체길이가 5,944m 이상 필요하다.

 

경기방법 

 

매치플레이(match play) · 스트로크플레이(stroke play) · 스리섬(threesome) · 포섬(foursome) · 스리볼매치(three ball match) · 포볼매치(four ball match) · 베스트볼매치(best ball match) 등이 있는데 처음의 두 방법이 가장 널리 실시되고 있다.

 

매치플레이에서는 각 홀마다 승부를 결정하여 이긴 홀의 수가 많은 쪽을 승자로 하며 이긴 홀 차에 따라 원업 또는 투업 등으로 이겼다고 한다.

스트로크플레이에서는 정해진 라운드에서 총타수가 가장 적은 쪽이 승자다.

실력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시합을 하는 것을 핸디캡 게임이라 하는데 파와 각자의 평균타수의 차를 핸디캡으로 나타내 실력을 평균화한 방법이 사용된다.

이 경우 핸디캡 수가 적은 사람이 당연히 우수한 선수이며 핸디캡이 0인 선수를 스크래치 플레이어라 부르고 18홀의 평균점수는 70 전후이다.

시합에서는 1라운드의 총 스트로크에서 핸디캡 수를 뺀 수를 네트라 하며 그 선수의 타수가 된다.

단, 이 방법은 아마추어 경기에만 적용되며 선수권대회는 핸디캡이 없이 치러진다.

관례적으로 보다 1스트로크 적은 타수로 홀을 끝내는 경우를 버디, 2스트로크 적은 것을 이글, 3스트로크 적은 것을 알바트로스라 하며 반대로 1스트로크 많은 것을 보기, 2스트로크 많은 것을 더블보기라 한다.


경기규칙
 

USGAR. & A.가 전세계의 골프 규칙을 정하며 매년 규칙집(規則集)을 발행하고 있다.

에든버러 골프인 협회에서 처음 정한 '일단 티 그라운드에서 홀을 향해 친 볼은 홀에서 주워 낼 때까지 만지지 않는다'고 하는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것의 예외로서 예를 들면 플레이를 금지하고 있는 아웃오브바운드에 공이 들어간 경우나 워터 해저드에 들어간 경우에는 벌칙으로 1타가 더해지며 원래의 지점에서 다시 치는 등의 방법으로 경기를 계속한다.

보수중인 장소나 일시적으로 생긴 물구덩이, 오두막 집에 떨어진 경우, 종이 봉지 속에 들어간 경우 등 정상적으로 경기를 할 수 없는 장소에 볼이 날아간 경우는 벌칙없이 공을 옮길 수 있다.

그밖에 코스에 따라 독자적인 결정이 이루어진다.

원칙적으로 오너시스템(심판 무입회제)으로 경기하며 예절을 중시하는 스포츠이므로 신사적으로 경기를 한다는 것이 대원칙이다.

경기 매너는 물론 규칙에도 정통해야 하며 가능하면 규칙집을 휴대하고 경기에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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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골프의 역사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셨네요.

참고로 캐디의 역사도 말씀드리면.....

[caddie] 를 둘러싼 어원에 관하여는 여러가지 설(說)이 있습니다.


1) 16세기에 에든버러에서는 "포터"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caddie" 라고

 

    렀으며 그것에 유래합니다.
 

2) 제임스 2세, 3세 ,4세가 젊은 장교(將校)들에게 클럽을 나르게해서 그 젊은

 

   장교에 해당하는 프랑스어인 "cadet"에서 유래합니다.

 

   
이 두가지의 설이 유력하며 현재의 골프사에서는 이것을 캐디의 어원(語源)으

 

로 삼고  있습니다.

러가지 설 가운데는 이런것도  있습니다.
 

3) 스코틀랜드에 옛부터 있었던 직업인 길리(gillie)에서 왔습니다.
 

   길리는 역시 귀족의 놀이인 피싱의 시중(낚시밥을 꿰는)드는 사람을 말하는

 

   데 이 설은,발음과도 그리고 그 직업의 성격상으로도 공통점이 많은데 말로

 

   서의 연계는 있을지언정 캐디의 어원으로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일러스트레이터이며 배우이고 또한 골프사의 연구,
특히 올

 

   드 톰 모리스의 스코어카드에서 부터 급여명세서 등도 콜렉션하고 있을 정

 

   도로 톰 모리스에 관하여 상세히 연구하고 있는 데이비드 조이 씨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6세기에 에든버러에서 잔심부름이나 포터와 같은 일을 해서

용돈을 벌고 있던 사내 아이들
을"캐디"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마침 첫번째의 시집에서 부군인 프랑스 왕을 잃고

스코틀
랜드로 되돌아온 메어리 스튜어트가 프랑스로 부터

젊은 장교나 귀족의 자제들을 시동(侍童)으
로서 데려 왔습니다.

이 시동(侍童)의 일과 잔심부름의 일이 비슷 했으므로 길가의

잔심부름으로 뛰
어다니는 사내아이들을 비꼬아서 cadet라고

부르고   그것 caddie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서책에 정
확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16세기의 포터와 같은 사내아이를 일컫게 된 [캐디]지만 그

최초의 역사에 남아있는  이름은
"앤드루 디크슨" 이라고 하는

소년이었습니다.

1681년,메어리여왕의 손자인 요크공작의 클럽을 나
르고

공작의 앞을 달려가면서 볼의 위치를 가르쳤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 디크슨 소년처럼 캐디를 하고 있었던 아이들은 대부분이

가난한 집안의 아이였습니다.


당시는 골프백 따위는 없었고 클럽을 그냥 그대로 팔에 껴안고

맨발로 코스를 걸었습니다.


골퍼가
주는 팁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삼고 있던 당시의 캐디

소년들을 이런 조크로 말 하고 있습니다.

플레
이중의 신사가 잘못해서 바로 뒤에 있던 캐디 소년을

클럽으로 때려 버렸습니다.

깜짝 놀라며 어떻게
할 바를 모르던 신사는 소년이 무사함을

확인하고는 사과 하면서 팁을 호기있게 많이 건네주었
다.

  
그러자 소년이

"나리, 다음번에는 또 언제 때려 주시겠습니까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윽고 캐디는 소년들로 부터 중년의 어른이나 프로들에게로

옮겨 갔습니다.

매치플레이에는 자기
의 캐디 이외의 자로 부터 어드바이스를

받으면 그 홀은 지게 됩니다.
 

그래서 클럽 운반이나 볼 수색을 잘하는 소년 캐디보다는

코스의 구석 구석까지 잘 알고 있는 프
로나 노련한 캐디가

소중하게 아껴지게끔 되었던 것입니다.
 

 1861년, 제 2회의 전영(全英)오픈(British Open) 챔피언이 되었던

올드 톰 모리스도
그린키퍼(잔디관리인)겸 우수한 캐디였습니다.

그는 R&A의 임원이나 유명한 귀족이 플레이 할 때는 캐디로
서 개런티를 받고

 

있었습니다.

   
"캐디가 클럽을 고르고, 골퍼는 칠 뿐이다." 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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